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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말 엘비스 프레슬리가 TV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엉덩이를 흔드는 순간, 미국의 10~20대 젊은 여성들은 자지러졌고, 전
세계는 로큰롤의 열기로 불타올랐다. 흑인 블루스와 백인 컨트리 음악의 특성을 결합해 로커빌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그의 노래는 갑자기
등장하여 적잖은 충격과 함께 당시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던 미국 사회에 문화 화합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의 공연을 관람하던 사람들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인종의 경계를 허물고 한마음으로 어우러졌던 것이다.
대중문화[mass culture]란
무엇인가? - 그 허와 실
비판철학의 기수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대중문화란,
대중[mass]이라는 익명의 집단 뒤에 개인이 숨어버림으로써 주체가 말살된 비본질적이고 저급한 문화라 평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산업’의 일환이 되어 일종의 상품으로 시장 속에 던져지기 때문이다. 마르쿠제에 따르면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일차원적 인간’의 문화가 바로
대중문화다. 취미로 클래식이나 오페라를 듣던 귀족과 상류층 역시 리듬앤블루스와 소울, 로큰롤 등의 대중음악에
배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당신이 평소에 즐겨 듣던 음악, 인생의 명작으로 꼽는 영화, 좋아하는 배우와 가수들을 떠올려보라. 그들은 당신의 삶에서 이미 소중한
‘추억의 이름’이 되어 있지 않은가? 왜 우리는 그들 혹은 그들의 작품에 매료되는 것일까?
단순히 엘리트주의적 사고로
재단하기에는 대중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에너지가 너무나 크다. 기업의 이윤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을지언정 대중문화는
일부 특권층만 누리던 예술을 TV나 라디오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예술의 대중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제 단선적인 시각을
‘살짝 뒤틀어’ 교양 없는 하급문화라 천대받았건만, 그럼에도 우리들의 일부가 되어버린 대중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탐험해 보도록
하자.
대항문화[Counterculture] 로서의 대중문화
권위적인 지배세력에
맞서 종교, 인종, 소수자의 자유와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청년문화를 ‘대항문화’라 부른다. 5~6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과 히피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록이나 소설, 퍼포먼스 등에 성공적으로 녹여낸 대중문화운동들이 있다.
정치적, 경제적 침체기에 빠진 70년대에 등장했던 펑크락은 단순한 코드진행에 공격적인 가사와 액션을 표방함으로써 당시 주류 음악과 히피의
잔재를 거부하고, 사회 전체에 깔려있던 무기력증을 극복하고자 했다.
80년대에 급부상한 힙합은 건물 벽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는
그래피티와 갱스터 랩, 스크래치, 브레이크 댄스 등의 유행을 낳았는데, 이는 사실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억눌린 채 살아가던 흑인들이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하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던 수단이자 통로였다.
이처럼 ‘대항문화로서의 대중문화’는 대중예술을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이 외에도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애창해 온 수많은
명곡은 대중문화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시대적 아이콘과 같다. 흑인들은 블루스와 가스펠을 통해 삶의 애환을 노래했고, 자메이카의 토속음악인 레게를
전 세계에 소개한 리스타파리안의 전도사, 밥 말리는 음악을 통해 인류 화합을 꿈꿨다. 그의 노래 속에는 춥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와 번민이
고스란히 녹아있고, 부패한 정치세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정신과 분노, 그리고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다. 밥 말리의 노래가 불리는 한 그 속에
담긴 love & peace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통속적인, 그러나 저마다의 감수성을 가진
대중문화
대중문화란 다분히 통속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을 모두가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계급차이를
없앤 것이자, 만인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 고마운 매개이기도 하다. 문화라는 것은 본래 창조적인 것이 아닌가? 대중예술이 한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를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일상의 것들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창조자 특유의 감수성’을 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란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지식인들이 임의로 부여하는 잣대를 벗어나 꾸준히 자생하는 예술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대중음악을 들려주는 가수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이 ‘개인적이고 은밀한 나의 노래’를 불러주기 때문이다.
양효실(미학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으며 논문 「보들레르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울대, 홍익대 및 다수의 교육기관에서 〔대중예술의 이해〕, 〔페미니즘 미학과 예술〕, 〔미적 인간의 이해〕, 〔예술과 현대 문화〕 등을 주제로 활발히 강연 중이다. 현대예술과 페미니즘 및 현대미학에 관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연구를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