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철학, 그 불가분의 관계
때로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한 시대의 철학적 풍경을 읽는 것과도 같다. 문학작품의 형상화에는 당대 작가들이 고민하고 기록한 철학의 흔적들, 즉 철학적 전략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강좌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소포클레스, 18세기의 볼테르, 19세기의 토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20세기의 헤르만 헤세와 제임스 조이스, D.H. 로렌스를 다루는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을 통해 윤리의 기준에 관한 사유를, 볼테르의 『캉디드』에서는 순박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 사회와 악에 대한 성찰을, 도스토예프스키의『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는 인간에 대한 관점과 소설 형식의 문제를,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인생과 죽음에 대한 관점’을 읽어보려고 한다. 또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예술론과 헤세의 『싯다르타』속 깨달음에 대한 성찰, 마지막으로 로렌스의『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통해 인간과 성의 문제를 성찰할 것이다. 각 강에서 짚어볼 문제들을 미리 살짝 엿보자
『안티고네』-윤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스 비극의 걸작으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현대 철학의 조류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며, 그 철학적 의미는 확장되어왔다. 크레온으로 대표되는 법·국가·남성·권력과 안티고네로 대표되는 자연법·윤리·여성 사이의 관계 또는 대립은 수많은 현대적 이슈들을 조망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강의에서는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비교적 조명되지 않은 안티고네의 여동생 이스메네와 약혼자 하이몬의 관점을 살펴보고, 그동안 이해되어온 크레온과 안티고네를 더 넓게 확장시켜보고자 한다. 또한 개인과 국가, 법과 윤리 사이의 대립점이 어디인지 비극 『안티고네』가 의미하는 심층적인 윤리관을 살펴본다.
『캉디드』 비관과 낙관 사이의 관용론
계몽주의자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알려진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이 소설은‘낙천적인’,‘순진무구한’이라는 뜻의 소년 ‘캉디드’가 남작의 딸과의 관계가 발각되어 궁전에서 쫓겨나 겪는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다. “세상은 최선으로 되어 있다.”고 믿지만 우스꽝스럽게 또는 본의 아니게 악한 상황에 빠지고 마는 순박한 캉디드. 따뜻하고 우화적이면서도 풍자적인 소설 『캉디드』에는 볼테르가 라이프니츠, 루소 등과 대결하며 전개한 철학적 문제의식이 녹아있다. 이 강의는 볼테르의『캉디드』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사이의 볼테르의 어떤‘관용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동시에 볼테르로부터 이어져온 서구의‘인류학적 상대주의’가 무엇인지, 그 전통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소설의 형식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서문에서“이 수기의 저자도 수기 자체도 지어낸 것이지만, 이러한 수기가 존재할 수 있을뿐더러 심지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서구 문학의 리얼리즘적 경향에도, 낭만주의적 경향에도 속하지 않지만 19세기 서구 문학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지하로부터의 수기』는 그의 5대 장편소설에 이정표가 된 작품이며,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형식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소설 속의 압축적 시간과 타자에 끊임없이 대답하고 질문하는 화자의‘다성적’형식은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상충 또는 대립하면서 그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형성한다. 3강에서는『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꼼꼼히 읽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의 세계관과 형식의 관계를 추적해본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 앞에서 타자를 껴안기
인간은 죽음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가? 혹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성찰하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진정한 타자와의 관계의 회복일 수 있는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허영과 타자를 서로 조화시킬 줄 아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불치의 병은 그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고 급기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그는 곧 자신의 허영과 삶의 무상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러한 삶을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러자 죽음의 공포는 사라진다. 그는 죽음 앞에서 현세에 충만한 삶에 대한 성찰에 다다른다. 이 강의에서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수용양상을 통해 만년의 톨스토이가 천착했던 죽음의 문제를 살펴본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구원의 미학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인 소설『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그의 미학이 응축된 소설이자 모더니즘 문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작품이다. 식민지 통치하에 놓인 아일랜드의 풍경과 종교, 민족, 민중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힌 시대 속에서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시대의 혼란을 넘어 더 높은 차원의 미적 통합을 꿈꾼다. 이 심미적인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디덜러스는 외친다. “삶이여, 오라, 나는 이제 백만 번씩이라도 경험의 현실과 만나러,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내 종족의 의식을 벼려 내러 간다.”조이스의 소설을 통해 모더니즘 미학의 특징을 알아보고, 철학과 예술의 경계를 살펴본다.
『싯다르타』- 깨달음의 문학
영미권에서는 헤세의 대표작으로 읽히는 『싯다르타』. 이 소설이 단순히 싯다르타의 전기를 묘사하고 있다는 견해는 이 소설에 대한 흔한 오해이다. 소설은 싯다르타 전기의 일반적인 서사를 뒤집는다. 세속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이행하는 전기의 서사가 아닌 고행의 세계에서 세속과 쾌락의 세계로, 그리고 다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싯다르타』의 구조에는‘모든 사물이 하나로 이어져있다’는 불교적 세계관에 대한 존경과 회의,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담겨있다. 불교와 도교, 서구의 철학이 함축된 『싯다르타』를 읽으며 우리는 문학작품이 주는 깨달음은 무엇인가 감히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 성이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영국 작가 로렌스의 대표작이다.『사랑에 빠진 여인들』에서 로렌스는 두 자매의 각각 다른 연애를 그리며, 두 자매가 사랑하는 두 남성 사이의 동성애적 관계가 이중 삼중으로 얽혀있다. 로렌스는 기존 성에 대한 입장은 두 방향에서 억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과도한 금욕주의이고 또 하나는 성욕 자체에 대한 물신적 태도이다.
이 둘은 모두 성에 대한 (근대적)자연주의적 태도에 머물러있다. 육체와 정신의 일치로서의 성을 긍정하는 로렌스의 성에 대한 이론은 전통적인 성관은 물론 이른바 성자유주의자의 성관과도 다르다. 달리 말하면 그의 성관은‘성의 형이상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로렌스의 자신의 ‘성의 철학’을 서구의 근대 물질문명 또는 근대성을 비판하는 중요한 개념적 장치이라고 생각했다. 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로 제시되는 오늘날, 로렌스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묻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전공인 러시아 문학을 넘어 세계 문학과 철학으로 꾸준히 ‘전방위적 작품 읽기’의 범위를 넓혀온 로쟈 이현우 선생과 함께 깊이 있는 읽기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이현우(서평가)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에 서평과 칼럼을 연재해 왔으며, 특히 ‘로쟈’라는 필명으로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http://blog.aladin.co.kr/mramor)을 운영하면서 인터넷 서평꾼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림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학 안팎에서 러시아문학과 인문학을 주제로 활발히 글을 쓰고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