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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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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개요
발터 벤야민은 20세기 사상사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철학자다. 그의 글은 난해하기로 유명하지만, 그 속에는 근대성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이 강좌는 벤야민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세 가지 개념—변증법적 이미지, 유사성, 기억—을 중심으로 그의 사유 세계에 접근한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벤야민이 독자적으로 고안한 표현법으로, 서양 철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개념이다. '변증법'과 '이미지'라는 서로 충돌하는 듯한 두 개념을 결합시킴으로써, 벤야민은 전통적 사유 모델에 도전장을 던진다. 유사성은 벤야민 언어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으로, 인간의 미메시스 능력과 언어의 본질을 탐구한다. 기억은 근대 역사관이 '객관적' 사료로 대체하면서 배제해버린 문화적 실천의 형태를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세 개념은 각각 역사철학, 언어철학, 문예비평이라는 상이한 영역에 산재해 있지만, 그 심층에서는 비판적 인식론을 중심으로 교차한다. 총 12강에 걸쳐 벤야민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어가며, 그의 철학적 주된 관심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본다.
■ 강의특징
이 강좌는 벤야민의 사상을 개괄하는 대신, 핵심 개념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변증법 개념 하나만 하더라도 칸트,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로 이어지는 철학사적 맥락을 짚어가며 벤야민의 '정지의 변증법'이 갖는 독특성을 부각시킨다. 단순히 벤야민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왜 그러한 사유에 도달했는지 배경까지 함께 살핀다.
벤야민을 둘러싼 지적 네트워크도 중요하게 다룬다. 아도르노, 프루스트, 보들레르, 카프카 등 벤야민과 관계 맺은 사상가들을 통해 그의 철학적 위치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벤야민이 이들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했는지 살펴봄으로써, 그의 사유가 단순한 인용이 아닌 독창적 재구성임을 확인한다.
강의는 『파사주 프로젝트』, 『베를린의 유년시절』, 「역사개념 테제」, 「유사성론」 등 벤야민의 주요 저작을 텍스트 중심으로 읽어간다. 고지현 교수의 설명은 빠른 편이지만, 핵심 내용은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명확하게 전달한다. 강의록이 제공되어 복습과 정리에 활용할 수 있다.
■ 추천대상
벤야민의 글을 한 번쯤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었던 사람에게 적합하다. 대중매체론자로서의 벤야민보다 그 심층의 철학적 성찰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 『일방통행로』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다가 막막함을 느꼈던 독자들에게 유용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철학이나 미학을 전공하는 학생에게도 권한다. 변증법적 이미지, 유사성, 기억이라는 개념은 현대 철학과 문화이론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논의되는 주제다. 이론적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된다.
다만 벤야민을 처음 접하는 초심자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철학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거나, 적어도 벤야민의 글을 한두 편 읽어본 경험이 있다면 강의를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인내심을 갖고 반복해서 듣는다면 초심자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 수강팁
강의 속도가 빠른 편이므로, 처음 들을 때는 일시정지를 활용하며 강의록과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중요한 개념이 나올 때마다 멈춰서 노트에 정리하면 이해도가 높아진다. 0.8배속으로 재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벤야민의 원문을 옆에 두고 강의를 듣는다면 더욱 효과적이다. 『발터 벤야민 선집』 시리즈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구비해두고, 강의에서 언급되는 부분을 직접 찾아 읽어보자. 강사가 인용하는 문장들을 원문에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벤야민의 문체와 사유 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다.
12강 전체를 한 번에 몰아서 듣기보다는, 3~4강씩 끊어서 듣고 소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특히 변증법 관련 초반부(1~4강)는 철학사적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하므로, 이 부분을 충분히 이해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길 권한다.
관련 도서로 고지현 교수의 『꿈과 깨어나기』를 함께 읽으면 강의 내용이 더 명확해진다. 강의에서 다루는 주요 개념들이 책에서도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 상호보완적이다.
■ 수강후기에서
"변증법적 이미지라는 개념이 왜 그리 모호하고 복잡하게 느껴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서구 전통 철학에 던지는 도전장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어서 좋았다."
"프루스트의 개인적 기억과 벤야민이 추구한 집단적 기억의 차이점을 명확히 짚어준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비자발적 기억이 역사 인식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설명에서 벤야민 사유의 깊이를 느꼈다."
"언어철학에서 유사성이 가지는 중요성과, 후기 언어이론이 초기와 어떻게 무게중심을 달리하는지 비교 분석해준 것이 유익했다. 미메시스 개념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교수님 말씀이 빠르긴 하지만, 내용의 밀도와 깊이는 최고다. 중간중간 정지하고 다시 듣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그만큼 알찬 강의였다."
일부 수강생은 난이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어려웠다", "초보자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개념이 명확해진다는 것이 기쁘다", "벤야민 드디어 감 잡았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 마치며
벤야민의 철학은 쉽지 않다. 그의 글은 명확한 체계를 갖추기보다는 단편적 사유의 성좌를 이룬다. 그러나 바로 그 불명확함, 그 미완결성이야말로 벤야민 사유의 본질이다. 그는 완결된 체계를 거부하고,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이미지 속에서 진리를 포착하고자 했다.
이 강좌는 그러한 벤야민의 사유를 세 개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론을, 유사성은 언어와 인간 본질에 대한 재인식을, 기억은 근대성 비판의 도구를 제공한다. 이 세 개념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얽혀 있으며, 그 교차점에서 벤야민 철학의 독특성이 드러난다.
벤야민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상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현실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역사주의가 놓친 것, 진보이념이 억압한 것, 과학적 객관성이 배제한 것들을 다시 불러내어 현재와 만나게 하는 작업이다.
이 강좌를 통해 벤야민의 복잡한 사유가 조금이나마 명료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사유가 단지 이론으로 머물지 않고, 각자의 삶과 경험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벤야민이 말했듯,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번쩍이며 살아 숨 쉰다.
고지현(인문학자)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경제학, 역사철학,
미학, 정치철학을 공부하고,
발터 벤야민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전북대 강사를 거쳐,
현재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