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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일 뿐인가?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상, 혹은 본질과 가상이라는 이원론의 영향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나의 이데아, 본질이 존재한다는 플라톤식의 믿음은 훗날 현대 철학자들에게 도전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본질은 여럿, 복수의 존재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바로 그 본질의 타자들, 다양한 개체들, 존재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플라톤에게 현실은 이데아를 모방한 것, 부차적인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반기를 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에게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한 게 아니라 현실이 곧 진리이고 본질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현상들로 이루어져 있지 파악할 수 없는 천상의 이데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이데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현상에 내재적이다. 이런 생각은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학파에 이르면 더욱 명확해지는데 이들의 철학은 이데아가 오히려 부차적이고 물질 세계, 현실 세계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유물론의 유래를 엿볼 수 있다.
본질과 현상의 이분법에서 변화와 생성의 철학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철학은 근대 서양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그 분야는 과학, 종교, 정치,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 하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서양 문명사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이르면 이데아보다 현상 세계에서의 경험이 더 중요해지고 나아가 계몽사상, 실증주의 등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변함없는 하나의 본질에 얽매여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은 늘 빠르게 변화하고 요동치고 있으며 생성하고 있다. 이 변화와 생성의 철학은 본격적으로 베르그송과 그의 철학을 계승한 들뢰즈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된다.
이 강의에서는 서양의 존재론이 이데아의 존재론에서 시뮬라크르의 존재론으로 변화한 과정을 훑어보면서 이런 변화가 함축하는 여러 문화사적 의미를 짚어본다.
이정우(철학자, 경희사이버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한 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교수, 녹색대학 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철학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경희사이버대 교수로, 들뢰즈 <리좀 총서>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다. 해박한 지식으로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가로지르며, 철학과 과학을 융합하는 등 ‘새로운 존재론’을 모색해 왔다.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