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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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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개요
역사는 과거의 사실인가, 아니면 현재가 만들어내는 서사인가? E. H. 카가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이래, 근대 역사학은 과학적 실증과 진보의 믿음 위에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탈근대라는 새로운 시대 조건은 이러한 근대적 역사관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리오타르가 주장했듯이, 탈근대에서는 대문자 역사History의 종말과 함께 소문자 역사들histories이 등장한다. 동시에 전지구적 차원에서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진다. 사이버 세계의 등장은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흐려놓았고,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이 결합한 팩션faction이라는 새로운 서사 장르를 탄생시켰다. 이는 '사실은 진실이고 허구는 거짓'이라는 근대 사실주의 문법의 파괴를 의미한다.
본 강좌는 이러한 탈근대의 변화된 상황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성찰한다. 역사를 인간, 공간, 시간이라는 세 개의 매개변수로 분석하며, 과거가 실재라면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가 만들어내는 서사임을 논증한다. 학습된 역사가 아닌 생성하는 역사, 정해진 역사가 아닌 만들어가는 역사를 탐구하는 지적 여정이다.
■ 강의특징
이 강좌의 가장 큰 특징은 탈근대라는 시대 조건에서 역사 개념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E. H. 카의 명제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인 근대가 과거가 된 지금, 우리는 어떻게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강의는 인간, 공간, 시간이라는 세 개의 매개변수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전개된다. 인간과 역사의 관계에서는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인간은 역사를 통해 인간이 된다"는 명제를 탐구한다. 공간과 역사에서는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적용해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의 3분법 체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기억의 장으로서 공간의 의미를 고찰한다. 시간과 역사에서는 시대구분의 문제를 마르크스, 베버, 토플러 등 다양한 관점에서 비교 분석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팩션에 대한 교수의 독창적 해석이다. 역사소설이나 팩션 사극을 현실 역사의 왜곡이 아닌 '꿈꾸는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는 테제는, 사실과 허구를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이 아닌 실재와 상상이라는 인간 삶의 두 측면으로 재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강의는 서양 역사철학과 한국사를 균형있게 다룬다. 아날학파의 망탈리테 역사, 영국의 비판적 사회사, 칼라일의 영웅사관 등을 검토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과 동이족 문화 코드, 조선왕조실록의 의미 등 한국사의 맥락에서 이론을 적용한다.
■ 추천대상
이 강좌는 역사를 단순히 암기 과목으로 여겨온 사람들에게 역사적 사유의 근본적 전환을 제공한다.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배운 연대기적 역사 지식에 의문을 품고, 역사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탐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역사학을 전공하거나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는 필수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랑케의 실증사학부터 포스트모던 역사 이론까지, 역사학의 주요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팩션 사극이나 역사소설을 즐겨 보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하다. 작품을 감상할 때 '역사적 사실과의 일치' 여부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사가 가진 의미와 상상력의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철학이나 문화 이론에 관심 있는 독자들도 환영한다. 푸코, 리오타르, 보르헤스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이론이 역사학과 어떻게 접속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역사적 관점이 왜 중요한지 깨닫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 수강팁
강의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므로 차분히 반복 청취하는 것을 권장한다. 특히 '재구성주의', '구성주의', '에피스테메' 같은 역사철학 용어들이 처음 등장할 때 강의를 멈추고 개념을 정리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미리 읽고 오면 강의 내용을 훨씬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교수가 카의 명제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지점들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각 강의가 다루는 세 가지 매개변수(인간, 공간, 시간)의 틀을 머릿속에 그려두면 전체 강의 구조를 파악하기 쉽다. 산발적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실은 이 체계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현재 한국 사회의 역사 논쟁들을 떠올려보자. 교과서 논란, 역사 드라마의 고증 문제, 과거사 청산 등의 이슈를 탈근대적 역사관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여러 수강후기에서 지적했듯이 교수의 차분한 목소리 톤 때문에 집중이 어려울 수 있다. 졸음이 올 때는 메모를 하거나 강의 속도를 1.2배로 조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강하는 것이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은 이 강의가 역사를 보는 시선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고 평가한다. "인간이 주인공"이라는 핵심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았다는 반응이 많다. 한 수강생은 "역사 수업을 들었지만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는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팩션에 대한 재해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는 평이 많다. 사극 드라마를 보며 역사 왜곡 논란에 고민하던 수강생이 "팩션을 '꿈꾸는 역사'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강의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난이도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역사철학 배경이 없는 수강생들은 "내용이 너무 학술적이고 어려웠다"며 용어 설명이 더 충분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차분하고 꼼꼼한 역사학 입문 강의"로서 체계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는 긍정 평가도 있다.
일부 수강생은 강의 제목에 비해 탈근대 논의가 부족하고 한국사 부분이 짧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양 역사철학 비중이 높아 한국사 맥락의 적용이 더 심도 있게 다뤄지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수강생은 이 강의를 통해 "학습된 역사가 아닌 생성하는 역사"를 내재화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능동적 역사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강의의 가치를 인정한다.
■ 마치며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 관한 학문이다.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서사화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의미와 미래의 방향이 달라진다.
탈근대라는 시대는 단일한 거대 서사의 종말을 고하지만, 동시에 무수한 작은 서사들이 꽃피울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사실과 허구, 실재와 상상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인간 삶의 양면으로 어우러지는 세계에서, 역사는 더욱 풍부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이 강좌는 7강 14교시, 약 12시간에 걸쳐 역사 개념의 전면적 재구성을 시도한다.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완강한 이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기봉 교수는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포스트모던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팩션시대』,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한국 역사학계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왔다. 그의 20년 이상 축적된 연구 성과가 이 강좌에 응축되어 있다.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다. 역사는 정해진 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질문이다. 탈근대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김기봉(역사학자, 경기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