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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온 사람, 박노자
누구보다 날카롭게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파란 눈이 있다. 러시아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 ‘박노자(朴露子)’의 눈이다. 박노자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등의 저서, 일간지의 칼럼을 통해 끊임없이 한국 사회 이면의 그늘을 폭로해 왔다.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예리한 비판들은 때론 통쾌하게, 때론 가슴을 콕콕 찌르는 바늘처럼 다가왔다.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위한 가치 있는 비판과 그 대안 찾기.
진보적 지식인이자 한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인 박노자와 함께 고민해보자 !
2007년! 러시아혁명 90주년의 해, 레닌을 되돌아본다
올해는 러시아 혁명이 90주년 되는 해이다. 반자본주의 혁명은 점점 잊혀 가고, 자본주의의 파렴치함은 나날이 극에 달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다시 레닌과 트로츠키의 혁명을 분석하고자 한다. 과거의 유물로 존재하는 혁명이 아닌 다시 창조되어야 할 혁명을 위해. 이 강좌는 직접 생산자의 직접적 생산 민주주의를 꿈꾸었던 레닌이 전시공산주의와 신경제정책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펴보지도 못했던 비극, 철저한 반전 투사였던 트로츠키가 소비에트 국가의 국방부 장관이 된 아이러니, 일국 민족혁명의 혁명적 잠재력과 국가자본주의의 보수성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중인 스탈린의 정치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르크시스트, 각기 다른 세 가지 삶의 모습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탁월한 혁명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교육 수준이 높고 교양 있는 부모의 여섯 자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맏형 알렉산드르가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1887년 처형당하자, 17세의 레닌은 혁명적 민주주의 전통 및 마르크스의 문헌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후에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하여 혁명을 지도했고 소련 최초의 국가 원수가 되었다.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으며,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 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 배반당한 혁명 ’, 그 비극적인 죽음!
1896년 니콜라예프에서 학업을 마쳤으며, 이곳에서 지하 사회주의 모임에 들어가 마르크스주의를 접했다. 잠시 오데사 대학교에 다닌 뒤 니콜라예프로 돌아와 지하 조직 '남러시아 노동자 연맹'의 창설을 도왔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의 지도자였으며 소련 외무 및 군사 인민위원을 지냈다(1917~24). 그러나 레닌이 죽은 뒤 일어난 권력 투쟁 과정에서 스탈린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추방당했다(1929). 스탈린 앞잡이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해외에서 반(反)스탈린 세력을 지도했다.
독재 정치의 광폭한 지배자!
1922~53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1941~53년 소련 국가평의회 주석을 지냈다. 그는 소련을 독재적으로 통치하면서 철저한 경찰 테러에 의해 그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전성기에 스탈린은 '빛나는 태양', '위대한 선생이며 친구'로서 찬양을 받았고, 한때는 러시아 정교회의 부주교로부터 공공연히 '우리의 아버지'(Our Father)로 불리기까지 했다. 자기 자신의 흉상·동상·초상을 많이 건립해 개인 숭배를 강요함으로써 전대 미문의 광신적인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의 삼각관계
G.P.골드스타인(G.P.Goldstein)의 이 사진은 러시아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다. 즉석에서 만든 연단 위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레닌과 그 옆에 서 있는 트로츠키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서면서 이
사진은 위조되었다.
스탈린의 명령으로 암살된 트로츠키의 운명을 암시하듯, 위조된 사진에는 트로츠키 대신 나무 계단이 채워졌다.
이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함으로써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의 관계를 단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박노자(인문학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출신으로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다. 영화 「춘향전」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한국에서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던 중 2001년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하였다. 여러 책이나 기고문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한국인보다 더욱 날카롭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진단해 온 진보적 학자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