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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古文): 옛글을 통해 오늘을 보다!
‘고문(古文)’이란 말 그대로 ‘옛글’이다. 시간으로 보자면 옛날의 글이라는 뜻도 있고,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를 잃지 않는 글’이라는 뜻도 있다. 고문의 반대말은 ‘금문’(今文)’, 즉 오늘날의 글이다. 오늘날의 글은 무엇인가? 오늘날 글이라고 하면 주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을 뜻한다. 바로 글의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깨진 글,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그 의미가 퇴색하는 글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옛사람들에게 글이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뜻은 나와 세상을 선하게 가꾸어가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본 강좌에서는 고문들 중에서 가려 뽑은 글들을 통해 이런 ‘오늘날’의 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앎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저 옛날 동아시아에서의 복고적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고문(古文)’에는 당대의 어떤 것에 대한 비판적인 지향이 있다. 이 지향을 읽어 내지 않으면 ‘옛것’은 그냥 오래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지향을 읽어낼 수 있다면 과거로 미래를 볼 수 있다. 그 미래에 사회의 미래와 개인의 미래가 함께 있다.
진보(珍寶): 옛글이 과연 진귀한 보배인가?
수많은 고문(古文)들이 모두 다 참다운 보물이라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글이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울리느냐에 따라 보물이 되기도 한다. 자기의 삶의 고민과 어떤 지점에 그 글이 주는 울림이 결부되어 다가오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문(古文) 중에서 ‘울림’이 있는 글들을 찾아 나가며 ‘잠독(潛讀)’하는 것이 이 강좌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잠독(潛讀)’이란 글의 의미를 자기의 삶의 의미와 결부시켜 말 그대로 그 글에 마음이 젖도록 읽는 것이다. 『노자』에는 “가장 빠른 길은 가장 천천히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한 자 한 자 천천히 익히는 것이 한문 공부에서는 가장 중요한 공부다. 세밀하고, 깊이 있게 보아야 그 의미가 다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 도잠(陶潛)의 <잡시(雜詩)>,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와 <춘일취기언지(春日醉起言志)>, 한유(韓愈)의 <원인(原人)>, 백거이(白居易)의 <양죽기(養竹記)>, 소식(蘇軾)의 <후적벽부(後赤壁賦)>,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까지 주옥같은 고문진보(古文眞寶)들을 통해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조성진(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서 한학연수과정을 수료했다. 인문출판사 편집장으로 수 년 간 책을 만들어 왔으며,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교양한자를 근 몇 년간 가르치고 있다. 대안학교에서 청소년들에게 동양 고전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대안교육공동체'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