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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팀의 스승들로부터 배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첫 번째 스승, 이상과 게오르크 짐멜 - 자본주의 속 화폐의 신
‘화폐의 신’이란 말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한없이 강하게도 혹은 약하게도 만들 수 있으며 인간들의 관계에 개입하여 불신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상은 그의 소설『날개』에서 화폐가 가진 힘을 잘 그려낸다.
“나는 오늘밤에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엊저녁에 그 돈 오원을 아내에게 주어버린 것을 후회하였다.”(『날개』)
돈을 모르던 주인공은 유아의 정신을 가진 미성숙의 상태였다. 하지만 돈을 알고 난 후부터는 활갯짓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상은 소설을 통해 화폐가 쉽사리 바꾸어 놓는 관계의 허술함을 폭로한다.
짐멜은 이상의 소설이 보여주는 상황에 구체적인 주석을 달아준다.
“돈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모든 인격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절대적으로 유보한 채 개인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가르쳐주었다.” (『현대 문화에서의 돈』)
두 번째 스승, 보들레르와 발터 벤야민 - 매춘, 도박, 에로티시즘
보들레르와 벤야민은 좋은 파트너다. 그들은 매춘, 도박, 에로티시즘 등 불쾌한 것들에 집중한다. 이것들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욕망에 기생하고 있다.
“모든 패션 속에는 극히 무자비한 방식으로 성적 도착의 기미가 들어 있다... 모든 패션은 살아 있는 육체를 무기물의 세계와 결합시킨다... 무기적인 것에서 섹스어필을 느끼는 물신 숭배야말로 패션의 생명의 핵이다.” (벤야민,『아케이드 프로젝트』)
이성의 복장에 따라 우리의 성적 욕구는 강화되기도 혹은 약화되기도 한다. 성적 대상을 갈구하는 우리의 눈은 벌거벗은 육체뿐만 아니라 그가 입고 있는 화려한 복장을 향해 있기도 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삶을 사는 인간들은 상대방의 내면을 파고드는 일보다 그의 외면을 둘러싼 것이 무엇인지에 더욱 몰두한다.
자본주의적 삶은 늘 도박으로 점철된다. 주식투자를 통해 일확천금을 얻고자 하는 것과 도박의 메커니즘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마찬가지로 남성들은 근사한 사랑을 가능하게 해줄 멋진 여성을 찾아 사창가에 들어간다. 그 욕망의 충족 여부는 전적으로 운에 달려있다. 벤야민은 도시를 사창가와 비슷한 호색한의 공간이라 칭한다.
세 번째 스승, 유하와 보드리야르 - 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오징어가 자신의 광명을 찾아 고기잡이배로 돌진하는 것! 그것은 죽음에 다가서는 일이다. 유하 시인은 인간에게서 오징어의 우둔함을 발견한 것 같다. 화려한 도시의 조명들은 인간 대 인간, 그 천연의 부딪힘을 인정하지 않는다. 빛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인간의 시선을 화려함으로 현혹한다.
유하는 우리의 자유를 소비의 자유라 표현한다.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은 소비를 함으로써 자유를 맛본다. 보드리야르는 그러한 소비의 자유를 ‘기호의 떠다님’으로 본다.
“... 사물은 기호라는 가치를 띄게 된다. 따라서 세탁기는 도구로서 쓰이는 것과 함께 행복, 위세 등의 요소로서의 역할도 한다.” (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中 )
세탁기는 단순히 세탁을 해주는 기기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안정적이고, 쾌적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즉 하나의 사물은 그것이 사물이 됨으로써 사용가치뿐만 아니라 기호가치 역시도 함께 부여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호가치가 공기처럼 부유하는 이러한 척박한 도시 속에서 우리가 살아나가야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드리야르는 그 탁월한 방법으로 선물의 교환을 제시한다. 선물에는 사용가치나 교환가치가 들어 있지 않다. 단지 상징가치만이 존재할 뿐이다. 상징가치가 소비사회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순수한 관계만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한 송이 꽃이나 조약돌은 너무 작아서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에서만 그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네 번째 스승, 미셸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 노동을 놀이로 바꾸자!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그 주인공이 색다르다.『로빈슨 크루소』의 프라이데이, 곧 방드르디가 그 주인공인 것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부르디외의 개념인 아비투스와 교묘하게 호환된다. 아비투스란 부르디외의 말대로 “구호화된 구조이자 동시에 구조화하는 구조”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특정 공동체의 규칙이 주체에게 내면화되어진 것이다.
로빈슨은 자본주의적 아비투스에 따라 스페란차섬의 총독으로 부임한다. 그러나 그 행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허례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절대적인 타자 방드르디는 로빈슨의 아비투스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들어갈 수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드르디는 실질적으로 일이라곤 전혀 하지 않았다. 과거와 미래의 개념이라고는 일체 알지 못하는 그는 오로지 현재의 순간 속에 갇힌 채 살고 있었다. (...)”
기존에 있던 자본주의적 아비투스가 사라지자 로빈슨의 눈에는 방드르디라는 존재가 단순한 피지배자가 아닌 고유한 삶을 영위하는 주체로 다가온다.
이 강좌는 네 사람의 문학가(이상, 보들레르, 유하, 투르니에)와 네 사람의 철학자(짐멜, 벤야민, 보드리야르, 부르디외)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우리보다 앞선 인문학자 혹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들이 느낀 이 사회는 과연 어떠할까? 강신주 선생의 명쾌한 강의는 소비사회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숙고하게 해 줄 것이다.
강신주(철학자)
문사철(文史哲) 기획위원으로 서울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노장사상을 전공했지만 서양철학에도 해박하며,
강연과 저서를 통해 '쉽게 읽히는 인문학'을 모토로
'철학의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다.
동서비교철학과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소통을 시도하는
다수의 철학 베스트셀러를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