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예술은 감각과 지각을 통해 개념을 사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철학은 아니지만 철학의 재료가 된다. 예술가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시대의 진부한 감각에 저항함으로써, 느끼고 지각하는 우리의 습관을 다시 생각하도록 해준다.
(출처: Francisco Goya,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시대의 심연을 보는 눈 _ 고야
고야는 평생을 궁정 화가로서 활동하면서 귀족과 왕족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충성스럽게 주문 제작했던 그였지만, 그가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한 것은 궁정 밖의 현실 속에서였으며, 진보와 자유와 이성을 열렬히 신봉했던 계몽주의자였지만 늘 악마적인 형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구체적 사건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특정한 시공간을 벗어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근대성과 현대 회화의 탄생 _ 마네
‘인상주의’ 그룹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네. 회화에서 마네의 공헌은 ‘새로운 내용을 도입했다’는 사실이나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그의 진정한 ‘위반성’이 회화의 전통적인 의미작동방식을 삐걱거리게 했다는 것, 그럼으로써 회화를 스스로 살아가게 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순간 속에 영원을 담다 _ 모네
모네는 야외의 햇빛 아래서 자연의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포착하는 데 열중했다. 백내장을 앓아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색을 잘 인지하지 못했고, 모네의 화면은 점점 형태를 식별할 수 없는 거대한 추상이 되어갔다.
내가 그리는 것, 그것이 나다 _ 반 고흐
반 고흐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광기가 그림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광기는 결과에 가깝다. 자신이 보고 느낀 세계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들과 불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 고흐는 자신의 상황과 대중의 몰이해를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자리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도전했다. 때문에 병이 있는 예술가는 있을 수 있지만 병약한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다.
Paul Klee, <Insula dulcamara>,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회화의 도(道)란 무엇인가 _ 클레
클레는 현대 회화의 과제를 한마디로 규정한다. 보이지 않는 것(비가시성)과 보이게 하기(가시화). 그의 회화론을 “형태발생의 회화론”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클레는 “모든 사물들에 대한 비밀의 열쇠가 보존되어 있는” 발생의 근원에서부터 회화를 사유한다.
회화에 대한 역설과 유머 _ 르네 마그리트
마그리트는 정교하게 사물이 재현된 공간 안에 문자 기호를 ‘침입’시킴으로써 그 공간에 구멍을 내고, 이미지와 대상의 유사 관계, 즉 캔버스의 이미지가 어떤 대상을 ‘재현’하고 있다는 관습적 사고를 ‘언짢게’ 만들어 놓는다. 마그리트는 화폭 안에 실재를 그대로 재현하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얼마나 부질없고 가당찮은 일인가를 깨닫게 한다.
이 몸이 이 세계다 _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몸으로 50여 년을 살면서 끈질기게 자신의 육체성을 탐구했다. 그는 ‘환자’로서 식민화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육체를 관통하는 힘들, 즉 문명, 의학, 섹슈얼리티, 제국, 신화 등을 자신의 몸에 기록했다. 미래에 대한 환상 대신 오직 현재하는 것, 지금 나를 스치는 것을 그린다.
TV, 부처, 노마드 _ 백남준
백남준은 TV를 부처와 접속시킴으로써 퍼스펙티브를 무한한 시간의 차원을 열어젖혔다. “움직이지 않는 노마드” 되기! 백남준의 ‘트랜스내셔널리티’란 어떤 정체성이나 경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매번 새롭게 자아를 떠나는 작업 과정에 의해 규정될 수 있지 않을까.
이 화가들은 각자의 시대 속에서 나름의 매체를 통해 예술적 지평을 넓혀나갔다. 이들에게 예술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었고, 세계에 대한 발언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100년의 시기 동안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살아왔을까? 8명의 화가가 우리를 그 역동적인 시공간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채운(미술사학자, 고전비평공간 규문 대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직장을 다니다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근현대미술에서 시작해서 시공간을 넓혀나가다 보니 근대를 넘어 고대(古代)에 이르게 되었고, 동서양의 철학과 문화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철학과 문화를 현대적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겠다는 포부로, 현재 ‘고전비평공간 규문’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동서양의 철학, 역사, 문화 전반에 횡단적인 독해와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철학을 담은 그림』, 『사람은 왜 알고 싶어 할까』,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느낀다는 것』,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재현이란 무엇인가』, 『언어의 달인, 오모 로퀜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