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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의 사상가, 도나 해러웨이
“나는 여신이 되기보다 차라리 사이보그가 되겠다!”
1991년,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1944~)의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라는 책이 발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썼던 논문들이 담긴 이 책은, 사이보그와 같은 잡종적 존재들을 내세우며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에 도전했다. 과학 기술과 자연을 각각 지배적 남성과 모성의 여성에 대입한 시각과, 여성의 인식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을 동시에 비판한 것이다.
그리하여 해러웨이는 과학 기술을 여성 해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이보그가 될 것을 주장했다. 한편, 모든 지식은 부분적이며 상황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과학에서 요구하는 객관성은 인식의 부분성과 상황성을 성찰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날을 세웠던 해러웨이는 2000년이 되자, 『반려종 선언』에서 더욱 확장된 사고의 지평을 보여주었다. 그는 불완전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이보그뿐만 아니라 동물들까지도 친족으로 끌어들여 함께 공동전선을 구축하자고 외쳤다.
반려종과 함께하는 실뜨기!
그렇다면 이 수많은 생물들과의 공동전선은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 2016년, 해러웨이는 『곤란함과 함께하자』로 이에 답한다. 여기서 다양한 생물들이 서로 맺는 관계는 다름 아닌 ‘실뜨기’(String Figure)이다. 해러웨이에게서 한 존재의 ‘주체성’이란 미리 내재된 것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맺는 관계가 만들어내는 효과이다. 이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다른 생물종과 동등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관계는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것! 모든 존재는 매 순간마다 서로 엉켜 갈등을 일으키고 풀어가며, 때로는 갈등 해결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존재의 관계를 ‘실뜨기’로 보면, 우리는 실패한 실 뭉치를 주워 다시 새롭게 풀어가려는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인류는 그동안 환경오염과 같이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남성 영웅이나 멋진 과학기술이 이를 말끔히 해결하는 유토피아적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반면 문제해결에 실패한 이야기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제거되고, 잊혀져왔다. 그러나 해러웨이는 ‘함께-되기’에 수반되는 ‘곤란함’을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지구 위의 삶은 본디 고통스러우며, 부분적으로만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필연적이다.
이 강좌에서는 곤란함을 껴안고 함께-되기를 실천하는 프로젝트들을 살펴본다. 우리는 인류에게 친숙한 비둘기와 개에서부터, 깊은 곳에 사는 해양생물과 상상의 존재까지 수많은 생물과의 기상천외한 실뜨기들을 만나게 된다. 강좌가 끝나갈 즈음엔 해러웨이의 해박한 식견과 자유로운 상상력에 감탄하며, 지구상에 아직 남은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유미(수유너머104 연구원)
수유너머104 연구원. 「비활성기체의 결정안정성에 대한 통계역학적인 연구」로 카이스트 화학과에서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기초과학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10년간 IT 회사를 운영하였다. 지금은 동양의 오래된 한문 텍스트들과 서양 철학을 횡단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관심사는 기계, 반려종 등 주로 인간 아닌 것들과의 만남과 과학기술 담론들이다. 현재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선언』과 『개와 인간이 만날 때』를 번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