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성사를 지탱하는 언어
때때로 매스컴을 통해 프린스턴이나 하버드와 같은 해외 명문대학교를
우수 졸업한 한국 학생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세계적인 지성의 중심에서 진행되는 학위수여식 장면은
지식을 사랑하는 많은 이에게 가슴 뛰는 장면이기도 하다.
TV에서 자료로 보여주는 학위수여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생소한 단어가 들린다. 미국의 유수대학들에서 ‘최우등 졸업’을 지칭하는 단어가
그러하다. 보통 최우등 졸업은 Summa cum laude라고 하며, 우등졸업은
Magna
cum laude라고 부른다. 언뜻 보기에도 영어가 아닌 이 단어들은 바로 라틴어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 많은 대학교들이
같은 방식으로 우등생을 지칭하고 있다.
여기서 서구 지성인이 라틴어에 대해 갖고 있는 경외심을 읽을 수 있다. 우수한 인재에게 붙여주는 영예로운 표현이 영어나 불어가 아닌, 바로
라틴어인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지성의 언어로 서구인의 정신에 뿌리내리고 있는 라틴어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사례다.
라틴어라는 산(山). 높을지라도 한없이 매력적인...
오늘도 기억되고
있는 서구의 숱한 고전들이 본래 라틴어로 저술되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학술용어가
라틴어로 명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접하는 한국어판 고전들은 어떠한가? 많은 한국어판 서적들은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여러 언어와 다수의 번역가를 거치면서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서양의 고전. 과연 원문의 의미가 잘
지켜졌을까?
언제나 번역의 한계는 오해와 억측을 자아내는 골칫덩어리다. 게다가 서구 정신의 정수를 담고 있는 명저들이 수차례 중역을 거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수업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고전을 원문으로 음미해보는 시간을 포함한다. 로마의 명장 카이사르,
사상가 키케로, 호라티우스의 성인식 등 다양한 소재를 직접 원문으로 읽어보기도 하며, 번역의 불안 없이 고전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이
준비되었다.
매력을 넘어 실용으로
한국인은 언제나 영어를 필수적인 언어로 여겨
왔다. 그런데 영어공부에 있어서 라틴어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영단어의 80% 이상이 불어에서 유래하고,
불어는 근본적으로 라틴어와 희랍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영어와 불어의 뿌리에는 언제나 라틴어가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미국 현지의 영어교육자들조차 자국인에게 라틴어 공부를 권유한다.
이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재인
자, 이제 고전의 매력과 언어 학습의 실용성을 겸한 라틴어를 시작해보자. 라틴어를 배운다는 것은 외국어 공부 이상의 특별함을 갖고 있다.
김진식(인문학자, 정암학당 연구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희랍 서정시’를 전공하였다. 박사과정 중 독일 마인츠대학 서양고전학과로 유학하여 박사과정을 마친 후, 호라티우스 연구에 매진하였으며 그리스 철학과 라틴문학을 집중적으로 다뤄왔다.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서울대학교와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희랍어와 라틴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