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개요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멈춰 선다. 하이데거는 2,000년 서양철학사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존재자'들에만 집중해왔다고 비판했다. 돈, 명예, 권력, 가족 같은 구체적인 존재자들의 세계에 매몰되어, 정작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의미는 망각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1927년 발표한 『존재와 시간』은 이 망각된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20세기 철학의 기념비적 저작이다.
본 강좌는 『존재와 시간』의 핵심 개념들을 두 가지 목표로 풀어낸다. 첫째, 존재, 시간, 현존재, 실존, 불안, 양심, 결단, 진리 같은 하이데거의 근본 사유를 서양 철학적 맥락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기초존재론(Fundamentalontologie)'의 근본 의미를 해명하는 작업이다. 둘째, 하이데거의 난해한 독일어 개념들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가지런히 풀어내어, 우리가 하이데거 철학을 '스스로의 말'로 생각하고 '자기 말'로 말할 수 있게 한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무엇을 경험하는가. 일상에 매몰된 '비본래적 삶'에서 벗어나 '본래적 삶'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엇인가. 세계는 단순한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의미의 그물망'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세계-내-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강좌는 하이데거와 함께 이 근원적 물음들 앞에 서는 철학적 여정이다.
■ 강의특징
이 강좌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우리말로 철학하기' 접근법이다. 구연상 교수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우학모)'의 총무이사를 역임하며, "서구 이론과 개념을 우리 식의 성찰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지식인의 직무유기"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하이데거의 개념들을 한국어로 재번역한다. '현존재(Dasein)'는 '거기에 있음'으로, '실존(Existenz)'은 '나가-섬'으로, '염려(Sorge)'는 '마음-졸이기'로 옮긴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러한 우리말 번역은 추상적인 철학 용어가 가진 생생한 의미를 직접 체감하게 해준다.
전체 8강으로 구성된 이 강좌는 치밀한 논리적 전개를 특징으로 한다. 1강에서는 하이데거 철학에서 '물음'이 갖는 근본적 중요성을 다룬다. 하이데거에게 철학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묻는 것'이다. 2-3강은 데카르트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존재 물음의 역사를 추적한다. 4-5강은 'Sein(있음+임)'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철저히 파고든다. '있다'와 '이다'는 어떻게 다른가, 근대 철학에서 '있다'가 어떻게 분열되었고 독일 관념론이 이를 어떻게 통합하려 했는가를 상세히 살핀다.
6강부터는 본격적으로 『존재와 시간』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주체'라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근대를 거쳐 어떻게 변천했는지 추적한 후, 하이데거의 '세계-속에-있음' 개념을 해명한다. 7강의 '실존과 염려' 부분에서는 인간 존재의 근본 구조인 '마음-졸이기(Sorge)'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불안의 기분이 어떻게 우리를 본래적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8강은 죽음과 양심, 빚의 문제를 다루며, 죽음으로의 선구(先驅)가 어떻게 진정한 실존적 결단을 촉구하는지 밝힌다.
강의는 단순히 하이데거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강자가 하이데거의 물음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지금의 나는 사회가 덧씌운 비본질적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존재가 망각되는 퇴락으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같은 실존적 물음을 계속 던지며, 하이데거 철학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 추천대상
이 강좌는 무엇보다 『존재와 시간』을 직접 읽어보려 했지만 그 난해함에 좌절했던 사람들에게 이상적이다.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책"이라는 수강생의 표현처럼, 『존재와 시간』은 철학책 중에서도 특히 어렵기로 악명 높다. 하지만 이 강좌는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왜 그렇게 복잡한 개념 장치를 만들어야 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독해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실존철학, 현상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필수적이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실존철학을 구축했고, 이는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같은 20세기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대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려면 하이데거를 피해갈 수 없으며, 이 강좌는 그 출발점이 된다.
또한 일상에서 막연한 불안이나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불안'은 단순한 심리적 증상이 아니라, 우리가 비본래적 삶에 매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실존적 신호다. 돈, 명예, 권력 같은 세속적 가치들이 삶의 의미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하이데거의 사유는 그 공허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틀을 제공한다.
철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이나 인문학 독서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자료다.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었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는 것은 서양 철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기도 하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근대 철학의 흐름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현대 철학의 시도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
■ 수강팁
이 강좌는 1-5강까지의 기초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수강생들이 지적하듯,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있다'와 '이다'의 차이, 한국어 문법 구조, 용어의 어원 같은 것들이 하이데거와 무슨 상관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초 작업 없이는 6강 이후의 본격적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내심을 가지고 1-5강을 완주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로 여러 수강생들이 "2배속으로 대충 듣고 끝냈는데, 묘하게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다시 듣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강의를 최소 두 번 듣기를 권장한다. 첫 번째는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용도로, 두 번째는 세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용도로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특히 하이데거의 핵심 개념들(현존재, 세계-내-존재, 실존, 염려, 죽음으로의 선구 등)은 반복해서 들으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강의에서 소개되는 우리말 번역어들을 직접 메모하면서 듣는 것이 좋다. '현존재=거기에 있음', '실존=나가-섬', '염려=마음-졸이기', '전복=뒤집어-엎기' 같은 번역어들은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오히려 원어보다 의미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우리말 번역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구연상 교수의 독자적 해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원전과 병행해서 공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존재와 시간』 원전을 옆에 두고 강의를 듣는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 강의만 들어서는 하이데거의 사유를 온전히 체득할 수 없다. 구연상 교수가 인용하는 부분을 직접 찾아 읽어보고, 강의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도 스스로 읽어보면서 자기만의 이해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제40절(불안의 기분), 제47-48절(죽음 현상), 제53절(죽음에로 앞질러 달려가봄) 같은 핵심 절들은 반드시 원문을 정독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이데거의 물음에 자신의 삶을 대입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지금 본래적으로 살고 있는가, 비본래적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집착하는 가치들은 진정 나의 것인가, 사회가 덧씌운 것인가?" 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하이데거 철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삶의 방식임을 체험해야 한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긍정적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고, 부정적 평가조차 강의의 질 자체보다는 접근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가장 많은 찬사를 받는 부분은 '우리말로 철학하기' 접근이다. 한 수강생은 "하이데거의 낯선 개념들을 새로운 우리말로 탈바꿈하는 시도가 흥미로웠고, 철학적 용어들이 지시하는 바를 제대로 함축하지 못하는 괴리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평했다. 또 다른 수강생은 "만일 하이데거가 한국말을 쓴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하는 물음에 많은 답을 주셨고, 덕분에 하이데거의 물음에 조금이나마 동참하여 답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강의의 구성에 대한 평가도 높다. "1-5강까지 끈기를 가지고 수강할 필요가 있다. 5강까지는 정말 기초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을 강의하시고 6강부터 본격적으로 강의하신다"는 평처럼, 초반의 지루함을 견디면 후반부에서 큰 보상을 받는다는 증언이 많다. "물음을 던지는 것의 중요성", "텍스트를 보는 방식이 치밀하고 분석적으로 바뀌었다"는 등 철학함 자체에 대한 태도 변화를 경험한 수강생들도 많다.
개인적 실존의 차원에서 감동받았다는 평도 눈에 띈다. "갑작스럽게 세상에 던져진 우리, 그 빚을 갚기 위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본래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를 느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인가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처럼, 하이데거의 사유가 자신의 삶과 직접 연결되는 경험을 한 수강생들이 있다.
다만 비판적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많은 비판은 "하이데거를 공부하는 건지 구연상 선생님의 이론을 공부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국어 번역과 해석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정작 하이데거 원전의 핵심 논의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하이데거와 아무 상관없는 국어 강의"라는 혹평도 있다. 이는 강의의 독특한 접근법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일부 수강생은 강의 중 호흡 소리가 불편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예를 더 많이 들어달라"는 요청도 있었는데, 추상적 개념 설명에 구체적 사례가 더 풍부하면 이해가 쉬워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평가는 "진정으로 멋있는 강의", "감동적인 강의", "하이데거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강의"로 요약된다. 특히 하이데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탁월한 입문 강좌로 평가받는다.
■ 마치며
"존재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2,500년 서양 철학사를 관통하는 근본 물음이지만, 동시에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이 두 차원을 연결하려 했다. 존재의 의미를 묻는 것은 곧 나 자신의 존재 방식을 묻는 것이며, 진정으로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본래적 삶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죽음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일상에 매몰된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한다. 돈, 명예, 가족, 권력 같은 모든 세속적 가치가 '무화'되는 그 순간, 역설적으로 존재의 의미가 환하게 드러난다.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의 탈은폐'라 불렀다. 죽음으로의 선구는 우리를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지만, 동시에 진정한 자유와 결단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는 '세계-속에-있음'이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그물망 속에서 다른 존재자들과 함께 있다. 이 세계는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고 해석하며 살아가는 의미의 지평이다.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선형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 과거와 본래적 미래가 현재 속에서 탈자적으로 통일되는 '근원적 시간'이다.
본 강좌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핵심 사유를 우리말로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야심 찬 시도다. '거기에 있음', '나가-섬', '마음-졸이기' 같은 번역어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낯섦이야말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철학적 개념들을 다시 묻게 만드는 힘이다. 하이데거가 독일어로 '물음'을 던졌다면, 구연상 교수는 한국어로 그 물음을 다시 던진다.
『존재와 시간』은 미완성 저작이다. 하이데거는 원래 두 부로 구성할 계획이었지만, 제1부만 출간하고 제2부는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어쩌면 존재의 의미를 묻는 작업은 본질적으로 미완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답이 또 다른 물음을 낳고, 그 물음이 다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기 때문이다.
이 강좌를 마칠 때, 우리는 하이데거의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의 물음을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 물음을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우리가 보는 세계는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익명의 사람들, 회사에서의 반복적인 업무, 가족과의 저녁 식사. 이 모든 일상이 단순한 '존재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이데거와 함께 철학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