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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위험'한가? '안전' 한가?
근대성은 과거 종교적, 관습적 공동체의 원리를 해체하고 '합리성'에 기초한 새로운 제도적 경계들(예컨대 공사 분리라는 인위적 경계)를 구축함으로써 인간중심의 사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근대적 인간중심의 사회원리가 좌우의 이념갈등을 뛰어넘는 다양한 문제들을 통해 도전 받고 있으며, 동시에 근대가 구축한 여러 제도적 경계들이 개인들의 미시적 상호작용 속에서 붕괴되고 있다.
이러한 근대성 해체의 징후들이 예술, 문학, 철학 분야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태로 이론화되었으나, 울리히 벡은 그것이 '탈근대성'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성에 대한 근대성의 도전'이라고 파악한다. 즉 사회학적으로 볼 때 근대성의 해체 징후들은 근대성의 자기부정이 아니라 근대성의 자기혁신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라는 것이다.
근대성의 자기혁신을 이끄는 정치적 주체는 근대적 주체인 인간이 아니라 근대적 사회체제의 '부작용', 즉 위험한 결과들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TV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불안'이라는 심리화된 형태로 개인들에게 전달되며, 개인들은 역동적인 위험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하위정치'라는 새로운 시민적 저항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서구의 근대적 합리성은 정치적 대립을 통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반쪽 근대'로 변형되었다. 울리히 벡은 이 '반쪽 근대'의 문제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현대적 상황과 결부된다고 본다. 즉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이해하는 모더니즘, 즉 근대성은 실상 '반쪽 근대'일 뿐이다.
벡은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근대성이 다시 한번 급진화되는 시기(소위 '탈산업사회화' 및 이후 '신자유주의')가 왔다고 보며, 그러면서 '반쪽 근대'가 체계적으로 생산한 부작용이 그러한 근대성의 급진화 과정에서 '또 다른 근대성'을 위한 정치적 자원이 된다고 설명한다. 근대성이 급진화되면서 기존의 '반쪽 근대' 제도들을 해체시키는 이러한 과정을 벡은 '성찰적(재귀적 또는 자기대면적) 현대화' 또는 '제2근대성'으로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제2근대성으로의 전환은 역사적 단계나 필연적 귀결이 아니라, 역사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홍찬숙(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
홍찬숙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독일 뮌헨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울리히 벡 교수의 지도 하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이며 서울대학교와 인천대학교에서 강의한다. 울리히 벡의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 <자기만의 신>(출간 예정)과 벡 부부의 공저 <장거리 사랑>(공역)을 번역했다. 저서는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공저), <독일통일과 여성>(공저) 가 있고, 울리히 벡의 개인화 테제에 대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서평 “샌델의 ‘정의’? 난 반댈세!”와 “위험, 피할 수 없는 유령의 오케스트라”를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