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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다르게 읽기
손창섭의 『비오는 날』도 김진영 선생님과 함께 읽으면 보이지 않았던 다른 것들이 보인다. 리얼리스트 손창섭의 소설들은 육체의 문제, 피조물성을 다루게 된다.
『비오는 날』은 한국 전쟁 이후, 그 폐허의 공간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항상 비가 오는 축축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뒤덮여 있다.
하지만 이 폐허에서 우울의 코드만을 읽어내는 것으로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구원을 원한다면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철저한 리얼리스트였던 손창섭에게 구원은 바로 '폐허'에 있다. 손창섭 소설에 등장하는 불구의 인물들, 동성애, 근친상간, 비, 우울, 등은 폐허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러한 폐허의, 퇴폐적 요소들이 구원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전쟁 이후, 폐허, 가난에도 불구하고 지배 담론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정상'의 담론을 통해 '비정상'을 통제하려 했지만 손창섭은 오히려 동성애, 근친상간을 이야기하며 그러한 지배 담론의 허위를 폭로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지배 담론에 맞서 살아 있는 '생명의 흐름'을 통해 그는 (폐허에서의)구원을 말하고자 했다.
이렇게 이번 강좌에서는 최인훈, 김승옥, 황석영을 비롯한 7명의 한국의 문호들을 다시 만나 본다. 기존의 뻔한 소설 이해 방식은 이제 그만 ! 김진영 선생님과 함께 육체성, 피조물성을 중심 테마로 한국 소설을 재독해 해 보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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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좌에 대한 김진영 선생님의 소회
모국어 소설을, 그것도 강의라는 이름으로 읽어야 하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곤혹스럽다. 즐거운 건 무엇보다 모국어의 다정한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기쁨과 아픔의 정겨움으로 들려주는 서사의 세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곤혹스러운 건 개개의 독립 서사들을 공적으로 구성하는 여러 제반 여건들(저자, 독자, 담론, 시장 등)의 구속성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언명한 바 있다:
“<음악>에 대해서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강의도 다르지 않다. 본 강의는 내가 사랑하는 작품에 대해서, 가능한 개개 작품들에 내재적으로 머물면서 그 사랑의 독서가 전해주는 즐거움과 쓸쓸함에 대해서 말하게 될 것이다. 물론 독서의 객관성을 잊지 않으면서.
김진영(인문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University of Freiburg)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하였다. 바르트, 카프카, 푸르스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을 넘나들며, 문학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생각을 바꿔주는 강의’, '인문학을 통해 수강생과 호흡하고 감동을 이끌어 내는 현장',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라 극찬 받았다. 또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독서 강좌로도 지속적인 호평을 받았다. 현재 홍익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