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국 비평계의 거목(巨木) 김윤식의 정통 문학 강좌!
우리 문학 연구와 비평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운
"문학계의 큰 산" 김윤식. 그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갔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왜? 그 전말이 궁금하다면 다음을 클릭하시라~
'수유+너머'에서 밤늦은 줄 모르고 펼쳤던 김윤식 선생의 열정적인 강의!
아트앤스터디에서 그 뜨겁고 생생한 현장을 동영상으로 직접
만난다!
한국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근대
100여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하고 한국 문학 연구에 평생을 천착해 살아 온 김윤식. 그는 말한다. 한국 근현대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그것은 바로 '근대'라고. 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근대의(자본주의적) 맹아는 언제부터 있었는가? 18세기 후반의 양안(量案, 토지대장)을 조사해보니 여기서 자본주의적 맹아가 들어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이것이 바로 '경영형 부농'의 개념이다. 김현과 김윤식은 18세기 후반의 자본주의적 근대의 맹아를 여기서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문학사를 쓰게 된다. - 1강 강의노트 중 -
이중어 공간에서의 작가들-이광수의 또 다른 일면
한국 근대문학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들의 상황은 모호함, 그 자체였다. 한국어 말살 정책에 의해 일본어로 밖에 글쓰기를 지속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은 자국의 ‘국어’도 아닌
식민지의 ‘모어’도 아닌 제3의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정의 될 수 없는 공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글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김윤식 선생은 친일과 관계없는 순수한 소설을 썼던 작가 부류로 제1유형을 묶고 제2유형으로 이광수를 가른다. 통상적으로 이광수는
적극적 친일행위를 했던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김윤식 선생은 그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사실을 첨가한다. 이광수는 창씨개명한 이름과
춘원이라는 본명, 두 개의 이름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다. 춘원이라는 본명으로 쓴 글에서는 대단히 강경한 민족주의자의 일면을 드러냈다고 한다.
극과 극의 글쓰기를 했던 이광수. 자국을 갖지 못해 이중어 공간에서 글쓰기를 해야 했던 시대, 그 모호한 한 지점을 이광수가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인류사를 담아야 한다!
문학 연구에 오랜 기간을 바친 대가의 문학관은 “소설은 인류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헤겔과 루카치를 인용하면서 소설이 어째서 인류사를 담아야 하며, 또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말한다. 김윤식 선생의 근현대문학사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과 더불어, 그의 문학관을 ‘한 수’ 배워보는 시간!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수강해보자.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사와 문학이론 연구, 작가론, 작품론을 위시한 실제 비평, 예술론, 에세이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거대한 학문적, 문학적 성과를 이룩한 독보적인 문학사가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문학 관력 서적을 출간하였으며, 한국문학작가상(1987), 제1회 대한민국문학상(1987), 제1회 김환태문학평론상(1989), 제2회 팔봉비평문학상(1991), 제3회 평운문학상(1993), 제11회 요산문학상(1994), 황조근정훈장(2001), 제10회 대산문학상(2002), 제7회 만해상(2003), 제20회 수당상 인문사회부문(2011년)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일본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75년부터 200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교환교수(1978년)와 일본 도쿄대학교 비교문학연구소 외국인 연구원(1980년),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1987년)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명지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여전히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