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인과의 흐름 속에서 무상하게 바뀌어 가는 것이라면 불교도 그 법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보리달마와 함께 시작된 선종의 새로운 흐름은 중국 불교의 역사를 바꾸었다. 이후 많은 선사들의 가르침만 남고 스승이라고 할 사람이 줄어들었을 때 화두를 참오하는 간화선의 새로운 방편이 창안된다. 이렇듯 인과의 조건에 따라 선종 안에서도 많은 전통과 흐름이 생멸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소리를 ‘선문답’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 깨달음과 가르침의 전통은 우리들에게는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닐까.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내딛는 물음
철학자 이진경은 이 선문답의 세계로 들어가며 공안 혹은 화두란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내딛는 질문이라고 한다. 이 질문, 혹은 의정이란 알음알이(지식, 인식)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견해와 입장을 세우고 알음알이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는 행위, 큰 죽음, 불가능한 것의 사유이다. 선문답이란 묻는 것이며, 답이 사라진 철벽, 길이 사라진 절벽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행위다.
이진경, 선을 철학하다
이진경(사회학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 근대적 주체의 생산과 관련하여」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오랫동안 공부하는 이들의 ‘코뮨’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자본주의 외부의 삶과 사유를 시도하며, 근대성에 대한 비판 연구를 계속해 온 활동적인 사회학자이다. 87년 발표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로 명성을 얻은 후, ‘이진경’이라는 필명으로 ‘탈근대성’과 ‘코뮨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또한 박태호라는 이름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