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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는 산업 혁명과 그 여파로 말미암아 세대 교체가 일어난 불안한 시대였다. 아도르노는 19세기가 막을 내리고 20세기로 전환하던 1903년, 독일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제적인 풍요, 그러나 음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은 심약한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특히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와 피아니스트였던 이모 덕분에 사상과 인생에서 음악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철학 강사가 된 그는 나치 정권 시절을 거치며 아우슈비츠라는 광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어, 그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폐단과 현대 문명의 야만성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호르크하이머와 협력하여 사회조사연구소를 개설한 그는, 『계몽의 변증법』을 함께 저술하는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 활동을 통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들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를 근간으로 여기에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사회학을 결합시킴으로써, 이데올로기의 모순과 산업사회의 부조리함을 폭로하고, 반성과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던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이라 불린다.
부유한 가정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그가 오히려 자본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비판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은가? 이는 그의 저서에서 언급된 ‘모순의 생산력’을 보여주는 예이다. 흔히 나쁜 것으로 여겨져 왔던 ‘모순’이란, 사실 생산을 거듭하는 원동력일 수 있는 것이다.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이 헤겔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현대 문명과 대중문화 비판
현대는 분리와 조직화를 미덕으로 삼는 시대이다. 학문 역시 음악, 문학, 역사, 철학 등으로 분리되어 발전해 왔다. 그러나 장르 구분과 경계를 허물고 전체를 바라보고자 했던 그가 보기에, ‘문명화 과정’은 ‘세분화 과정’이자 ‘지배 과정’과 같았으며, 20세기는 일종의 ‘시스템화된 관리 사회’에 지나지 않았다. 자타를 구분 짓지만 ‘타자’만을 양산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주체란 없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자기 유지' 혹은 '버티기의 철학'
그렇다면 ‘주체’란 무엇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주체’이다. ‘사유’란 그러한 주체의 권능과 같다.
“산업화된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어떻게 하면 쓰러지지 않고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도르노는 현대인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혼자서는 이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그 해답을 어린 시절 즐겨 듣던 ‘연탄곡’에서 찾았다. 화려한 기교가 없는 소박한 그 노래가 둘이서 함께 연주해야 성립할 수 있는 것처럼, 현대 사회 역시 주체 혼자만이 아닌 더불어 살아갈 때 존재 가능함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이 강좌는 ‘상처’와 ‘유리병’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그를 이해하고자 한다. ‘유리병’이 조난당한 배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고대하는 최후의 단말마적인 기대라면, 유리병 속의 ‘악보’란 일종의 유토피아다. 몇 가지 상징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주체의 ‘자유’가 구속당하는 지점에 주목했던 아도르노의 철학적 사유를 알아갈 것이며, 더불어 나 자신의 ‘자유’에 더욱 다가가게 될 것이다.
김진영(인문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University of Freiburg)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하였다. 바르트, 카프카, 푸르스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을 넘나들며, 문학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생각을 바꿔주는 강의’, '인문학을 통해 수강생과 호흡하고 감동을 이끌어 내는 현장',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라 극찬 받았다. 또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독서 강좌로도 지속적인 호평을 받았다. 현재 홍익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