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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냐르와 음악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파스칼 키냐르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기로 유명하다. 음악가 집안에서 나고 자라, 오르간과 비올라 다 감바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었고, 연주자의 삶을 살고자 한 적도 있었다. 결국 연주자의 길을 접고 작가의 길을 가기는 했으나 그는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 임원으로 활동하며 유명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인 조르디 사발(Jordi Savall)과 함께 고음악 원전 연주 단체인 ‘르 콩세르 데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을 창단하기도 하고, 『음악 혐오』, 『빌라 아말리아』,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부테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음악과 음악가를 다루었다. 그리고 아마도 키냐르가 음악과 음악가를 예술과 삶의 문제로 가장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 『세상의 모든 아침』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
『세상의 모든 아침』은 키냐르가 1991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키냐르가 직접 각색을 하고 알랭 코르노가 감독을,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주연을 맡아 같은 해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7세기 프랑스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생트 콜롱브(Sainte Colombe)와 그의 제자 마랭 마레(Marin Marais, 1656~1728)의 상반된 삶을 통해 음악과 예술, 사랑과 상실, 영혼의 소통, 예술의 본질을 그리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예술은 무엇일까?
“선생님, 전부터 여쭙고 싶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왜 연주하시는 작품을 출판하지 않습니까?”
“아,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어내는 것은 물, 물풀, 쑥,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 같은 헌물일세.”
파스칼 키냐르는 예술이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무엇의 모방 또한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은 무엇일까? 생(生)은? 시(時)는? 다 맞아들이면서도 다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게 생이라면, 그런 생을 사랑하자. 현재진행형이라는 아름다운 상실을 사랑하자. 파스칼 키냐르의 대표작 『세상의 모든 아침』을 프랑스어 원문으로 읽으며, 17세기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류재화(번역가,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강사)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누벨대학에서 파스칼 키냐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프랑스 문학 및 역사와 문화, 번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심연들』 『세상의 모든 아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달의 이면』 『오늘날의 토테미즘』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보다 듣다 읽다』, 발자크의 『공무원 생리학』 『기자 생리학』, 모리스 블랑쇼의 『우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