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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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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개요
우리는 모두 세계 속에서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가정, 학교, 사회집단, 국가 등 각각의 세계는 일정하게 질서 지워지고 관계 지워진 존재자들의 집합체다. 우리는 각자 세계가 부여한 규정성을 가진 채 살아가며,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내야 할 역할이든 타인들이 바라보는 나의 성격에 대한 특질이든 간에 우리를 규정한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를 규정하는 세계의 바깥, 기존의 세계와 부딪히는 간극이나 틈새, 즉 '알려지지 않은 자로서의 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이 질문의 대상은 '나'가 아니어도 좋다. 동물, 사물, 공간으로도 치환될 수 있다. 존재론적 질문은 미규정적이고 무규정적인 '존재 그 자체'에 대해 궁금해한다.
이 강좌는 문학과 예술 작품 속에서 존재론이 어떻게 새롭게 태어나는지 탐구한다. 빛의 세계를 넘어 어둠과 그늘에 주목하며, 보이는 것과 이해 가능한 것 너머에 있는 것들, 우리의 지평선 바깥에 있는 틈새들을 바라본다.
■ 강의특징
이진경 교수는 존재의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서양의 예술 작품들과 국내 문학 작품들을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서부터 러시아의 구축주의까지, 말라르메와 랭보의 시는 물론 한강의 『채식주의자』까지 다룬다.
강의는 철학이지만 어느새 문학으로, 예술사로, 건축으로 끊임없이 횡단하고 질주한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고흐의 작품과 연결하고, 송승환과 진은영의 현대시를 존재론적으로 분석하며,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감응'과 '밀림'이라는 개념으로 읽어낸다.
특히 '대기(분위기)의 예술'이나 '어둠의 존재'에 대한 사유는 미규정적이고 무규정적인 '존재 그 자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존재와 존재자, '있다'와 '이다'를 구분하여 사유하는 방식은 리얼리즘이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이면을 포착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 추천대상
첫째, 현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새로운 방법론을 터득하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송승환, 진은영의 시나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같은 최근 작품들을 존재론적 질문 방식으로 접근하면, 난해하고 모호해 보이는 현대 예술 작품을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둘째, 철학적 사유를 철학의 안과 바깥에서 동시에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이 강의는 정말 융합, 하이브리드 그 자체다. 인문학은 원래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따로 또 같이 연결되어 있는 공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셋째,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횔덜린이나 고흐 같은 예술가를 통해 이해하고 싶은 이들, 추상적인 철학 개념을 구체적인 예술 작품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유익하다.
■ 수강팁
강의록이 제공되지만, 강의는 이진경 교수의 저서 『예술, 존재에 휘말리다』를 기반으로 진행되므로 책을 옆에 두고 보면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한 강좌당 160분에서 174분에 이르는 긴 강의 시간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 강좌를 여러 번에 나누어 듣거나, 교시별로 끊어서 듣는 것을 추천한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듣는 것이 몰아서 듣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강의에서 다루는 예술 작품들을 사전에 찾아보거나, 강의 후에 직접 감상해보면 이해의 깊이가 달라진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고흐의 작품이나 말라르메, 랭보의 시를 미리 읽어두면 강의 내용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5강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므로, 이 작품을 읽어본 후 강의를 들으면 '불러냄과 불러들임', '부재하는 것들의 리얼리즘'에 대한 이해가 명확해진다.
■ 수강후기에서
"철학적 사유가 어느새 문학으로, 예술사로, 그리고 건축까지 끊임없이 횡단하고 질주한다. 개념의 타래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쯤, 인문학은 원래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또 같이 연결되어 있는 공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학이 존재를 다룬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리얼리티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철학보다 오히려 문학이 존재의 이면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다는 말에 무릎을 쳤다."
"문학 작품을 접할 때의 방법론 같은 것을 터득한 느낌이다. 모든 작품을 존재론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강의에서 이야기해 준 존재론이라는 질문 방식을 다양하게 적용하고 응용하면서 현대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일부 수강생은 "강의 내용의 전개가 산만해서 집중하기 어렵다"거나 "강의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서 부담스러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개념들을 충분히 소화하며 듣기 위해서는 여유 있는 시간 계획이 필요하다.
■ 마치며
존재 그 자체를 사유한다는 것은 다른 삶의 가능성들에 대한 사유다. 지금 내가 보는 것과는 다른 세계를 향한 출구를 바라보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다른 세계를 불러들이려는 시도다. 때문에 존재론에서 말하는 '여기에 있음을 사유하는 것'은 그저 지금의 물리적 상태에 관한 있음이 아니라, 수많은 규정가능성들과 잠재적인 사건들을 내포한 정치적인 행위다.
문학은 세상의 밝은 빛 속에서 존재의 어두운 단면을 보고자 하고, 예술은 어두운 심연 속에 갇힌 부재하는 것들을 불러내고자 한다. 조화롭고 합치된 세계를 뛰어넘어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론을 만나보자. 암흑과 심연의 안내자 이진경과 함께 지금껏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존재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따라 읽어감으로써, 우리는 시야의 확장뿐 아니라 새로운 감수성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강좌를 통해 우리의 삶 속으로, 우리의 시간 속으로 낮선 존재를 '불러들인'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들이 각자의 세계 속에서 삶을 휘감을 수 있는 강력한 강도와 깊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진경(사회학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