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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 그의 언어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파스칼 키냐르. 그는 작가일 뿐 아니라 음악가이며 철학자이고 고전 번역자이기도 하다. 음악가 아버지와 언어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실어증을 앓기도 했던 키냐르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키냐르에게 언어를 찾는 작업은 선사시대인들이 동굴 내벽 너머의 다른 세계와 닿기 위한 간절함으로 암각화를 새기듯, 이 세계에 속하는 언어를 통해 이 세계 너머의 언어에 닿으려는 몸부림 같다. 그런 만큼 그의 언어는 정교하고, 독창적이고, 아름답고, 많은 이미지를 매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대중적이지 않으나 열광적인 독자들을 갖고 있고, 특히 작가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키냐르표 낱말들
이 강의에서는 키냐르의 문학 세계를 특징적으로 드러내주는 몇몇 낱말들을 탐색해보려고 한다.
1강. 은둔자
“나는 온 세상에서 휴식을 찾았으나 한 권의 책과 더불어 구석진 곳이 아닌 어디에서도 휴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말은 키냐르가 전하는 포르루얄데샹 암자의 은둔자 무슈 드 퐁샤토의 삶이면서, 곧 키냐르의 삶이다. 키냐르 문학 세계의 중요한 역사적, 사상적 배경이 되는 프랑스 17세기의 장세니즘 및 ‘은둔자’ 세계를 들여다본다.
2강. 심연들
『심연들』의 문장을 통해 키냐르가 특별히 선호하는 만물들의 복수성 개념을 탐색하며, 총칭하고 정의하거나 도그마화하지 않으려는 키냐르의 세계관을 성찰한다.
3강. 사랑
프랑스어 amour의 특수한 의미는, 키냐르에 따르면, 모음 a와 자음 m이 내는 본능적인 포유류의 ‘젖 빨기’ 소리이다. 아니다, 그것은 분리로 인한 고통을 만회하려는 듯한 강렬한 연속성에의 희구이다. 키냐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4강. 바로크
키냐르는 바로크적이다. 키냐르는 17세기적이다. 키냐르에게 ‘바로크’란 감각이며, 생리이며, 심리이며, 심미이다. 또한 “완전한 파괴, 자유를 부르짖는 자들, 데카르트파들, 스피노자파들”의 세계를 꿰뚫는 놀라운 역사적, 정치적 통찰이다.
5강. 사냥
역사보다는 선사에 매혹된 키냐르가 구석기 동굴벽화를 그의 문학 곳곳에서 환기할 때, 그것은 예술의 기원이, 문학의 기원이 왜 탄생했는지, 그 비밀을 알아버린 자의 계시적 폭로이다. 키냐르는 말한다. “잃은 자는 끊임없이 그 잃어버린 것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적인, 모방적인, 온당치 못한, 용서받지 못할 포식을, 그 해묵은 원조 사냥을 재발”한다고.
6강. 콩트
키냐르의 파편적 글쓰기 취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키냐르는 든 문학 장르를 버린다 해도 콩트는, 즉 장자식의 우언과 중언, 치언처럼 맞는 듯 안 맞는 듯 몽환적으로 일정한 방향 없이 말하나, 더 튀고, 더 생기 있고, 더 “곡기”가 되는 언어를 사랑한다고 단언한다. 키냐르가 득도하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한 그만의 문학 구조, 그 진실을 엿본다.
7강. 낙마한 자들
키냐르가 몸소 체험한 삶과 죽음의 경계 체험. On&Off의 체험. 그만이 아니라 루소의 체험, 니체의 체험, 또 그 밖의 수많은 우리들의 체험, 그리고 만물이 소생하는 원리. 신생(新生)을 얻기 위해서라도 상정해야 할 우리들의 상상적 죽음. 감상적 인간 주체의 몽상을 단번에 끝내버릴, 불교적 니르바나의 체험을 만난다.
8강. 욕망과 부재의 곳
키냐르는 현대 물신사회의 ‘욕망’ 개념에서 방향을 돌려, 저 고대 라틴 세계의 ‘결핍’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가 ‘욕망’의 진짜 근원을 탐색한다.
9강. 에크프라시스
Ekphrasis는 시각적 표상에 대한 언어적 표상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지만, 어원대로라면 “끝까지 설명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그것은 그림을 언어로 묘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언어를 드리워 언어 뒤 너머에 있을 비언어적 세계, 이미지를 더욱 기적적으로 보아버리게 만드는 기술이다. 키냐르는 문학하며 언어를 지향하지 않는다. 차라리 비언어를 지향한다.
10강 읽기-번역하기-쓰기
키냐르는 이 세 개의 집, 세 개의 세계에는 서열도 순차성도 없다고 말한다. 비공시적이면서 공시적인 세계를 동시에 연상하며 이 세 활동을 면밀히 성찰하다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학적 내공을 연마하는 비법을 전수받을지 모른다. 키냐르가 정리한 ‘읽기’와 ‘번역하기’ ‘쓰기’의 개념을 통해서 말이다.
류재화(번역가,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강사)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누벨대학에서 파스칼 키냐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프랑스 문학 및 역사와 문화, 번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심연들』 『세상의 모든 아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달의 이면』 『오늘날의 토테미즘』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보다 듣다 읽다』, 발자크의 『공무원 생리학』 『기자 생리학』, 모리스 블랑쇼의 『우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