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노래 - 피타고라스, 대장간에서 우주를 듣다 새벽녘, 피타고라스는 다시 그 꿈을 꾸었다. 수많은 숫자들이 공중에 떠다니며 춤을 추는 꿈. 1과 2가 만나 3을 낳고, 정사각형과 정삼각형이 서로 얽히며 기묘한 문양을 만들어내는 꿈. 그는 평생 이 수의 비밀을 풀기 위해 살아왔다. 이집트에서 20년, 바빌론에서 12년을 보내며 수학과 기하학을 배웠고, 이제 크로톤에 정 F 소설
당신도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다: 법의 경계선에 선 벌거벗은 생명들 게토 앞에 선 철학자 - 2005년 베네치아. 좁은 운하를 따라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16세기에 만들어진 유대인 게토에 도달한다. '게토(ghetto)'라는 단어가 바로 이곳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었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은 베네치아 건축대학(IUAV) 교 F 소설
중세 스콜라 철학의 정점에서 침묵을 선택한 이유 1273년 12월 6일, 나폴리의 산 도메니코 수도원. 이른 새벽 미사를 마친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촛불이 흔들리며 책상 위의 양피지들을 희미하게 비췄다. 『신학대전』의 마지막 부분, 그가 평생을 바쳐 완성하려던 대작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토마스는 깃털 펜을 들었다. 그리고는 멈췄다. F 소설
노동계급을 넘어선 '다중' - 프리랜서, 이주노동자, 실업자가 혁명의 주체가 되는 시대 1999년 겨울, 파두아 외곽의 작은 아파트. 안토니오 네그리는 창밖으로 눈 덮인 알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순여섯의 나이, 칠십 년대 '붉은 여단' 사건으로 십사 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프랑스 망명 생활을 거쳐 자진 귀국해 다시 복역한 그는 이제 막 석방되어 가택연금 상태였다. 발목에는 전자 팔찌가 채 F 소설
"우리는 지금까지 사태 자체를 본 적이 없다" 1900년 가을, 할레 대학교의 한 연구실. 벽시계가 밤 11시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에드문트 후설은 책상 위에 놓인 수학 논문들을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촛불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그의 눈앞에는 지난 십 년간 천착해온 수학 기초론 연구의 결과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산술의 철학』을 출간한 F 소설
진정한 시간은 시계가 아니라 기억 속에 있다 -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와 소설가의 운명적 만남 1895년 가을, 파리 앙리 베르그송 교수의 서재에는 낙엽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서른셋의 철학자는 책상 앞에서 펜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물질과 기억』의 마지막 장을 써내려가야 했지만, 도무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베르그송은 중얼거렸다. "물리학자들은 F 소설
프라이부르크, 1927년: 마르틴 하이데거의 마지막 질문 1927년 10월, 흑림의 토트나우베르크 오두막. 마르틴 하이데거는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새벽 빛을 바라보며 잠에서 깨어났다. 서른여덟의 나이에도 여전히 그의 머릿속은 끝없는 질문들로 가득했다. 『존재와 시간』의 원고가 책상 위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고, 어젯밤 마지막으로 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현존재 F 소설
파리, 1949년: 시몬 드 보부아르의 각성 1949년 3월의 파리는 여전히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생제르맹 데 프레 거리에는 폐허 사이로 새싹이 돋아나듯 카페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있었고, 11번가의 작은 아파트에서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원고지 앞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녀는 방금 써 내려간 이 F 소설
파리, 1967년, 서구 철학 2천 년 역사를 뒤흔든 결정적 순간 1967년 9월,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의 복도는 여전히 여름의 열기를 품고 있었다.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연구실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손에는 방금 출간된 자신의 저서 세 권이 들려 있었다.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37세의 철학자는 이 책들이 철학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F 소설
파리, 1981년: 보드리야르와 사라진 현실 1981년 10월 어느 비 오는 화요일 아침, 장 보드리야르는 낭테르 대학교 사회학과 연구실에서 원고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회색빛 구름이 파리 교외를 덮고 있었고,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그의 손끝에는 반쯤 쓰다 만 글이 있었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현실이 F 소설
파리, 1961년: 이성과 광기의 경계에서 1961년 3월의 파리는 여전히 겨울의 냉기를 품고 있었다. 미셸 푸코는 생트안느 정신병원의 회색빛 복도를 걸으며, 발걸음 소리가 차갑게 울리는 것을 들었다. 서른다섯 살의 그는 이미 철학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푸코 선생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F 소설
렌즈를 갈며 사유하다 1677년 2월 21일, 헤이그 근교의 작은 마을 파빌리온. 바루흐 스피노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렌즈를 갈고 있었다. 맑은 아침 햇살이 작업대 위로 스며들어 유리 가루들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기침은 유독 거칠었다. 손수건에 묻은 붉은 반점들이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F 소설
나치 추격을 피해 도망친 천재 철학자의 마지막 24시간 1940년 9월 26일 새벽,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작은 마을 포르부. 발터 벤야민은 호텔 방 창가에 앉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나는 피레네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방 안에는 그가 목숨처럼 여기는 원고가 들어있었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그 원고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F 소설